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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악몽: 4만 대군 이집트 상륙한 결과

짜짱면 2026. 1. 5. 17:25

인도의 새로운 총독 웰즐리 경은 한벵골 원주민에게서 나폴레옹이 4만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에 상륙했다는 충격적이며 반갑지 않은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다. 어벵골인은 홍해 해안의 지다에서 빠른 아랍 배를 타고 켈커타에 막 도착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한 영국 전함이 봄베이에 도착하여 전해 준 정보는 그 소문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줬다. 이렇게 정보가 늦게 전달된 한 이유는 프랑스 침략군이 영국 지중해 함대에 거짓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몇 주 동안 프랑스 함대가 이집트로 가는 것인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것인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간에 나폴레옹이 그러한 대군을 이끌고 이동한다는 사실은 런던, 특히 인도 감독위원회의 던더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심각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유럽 세력 가운데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인도의 상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였으나 그래도 그 지위가 확고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동인도회사는 프랑스 등과 싸우느라 거의 파산 지경으로 내몰렸기에 나폴레옹과 다툴 입장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우선 멈추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협이기는 하였지만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이제 나폴레옹의 다음 행동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난무하였다.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나폴레옹이 육로로 진격하여 시리아나 터키를 통과하여 아프가니스탄이나 발루치스탄으로부터 인도를 공격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의 홍해 연안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바다로 올 것이라 확신하였다. 던더스는 나폴레옹이 육로를 택할 것이라 확신하여 심지어 정부에 러시아 부대를 고용하여 그를 막아야 한다고 권하기까지 하였다. 동인도회사 내부의 군사 전문가들은 홍해가 반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 때문에 일 년 중 상당 기간 동안 닫혀 있기는 하지만 침략이 이루어진다면 그 경로는 바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 나폴레옹 군이 홍해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영국 해군을 급파하였다. 한 부대는 영국에서 희망봉을 돌아서 홍해로 갔으며 한 부대는 봄베이에서 바로 홍해로 갔다. 캘커타에서도 홍해로 나오는 길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식이 그 길을 통하여 인도까지 기록적인 속도로 전해졌으며 그 덕에 동인도회사 군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도의 프랑스인들을 기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홍해와 이집트를 거치는 정규 운송편은 없었지만 긴급한 소식이나 갈 길이 바쁜 여행자들은 가끔 희망봉을 돌아가는 일반적인 항로보다는 그 길을 이용하고는 하였다. 희망봉을 돌아갈 경우 바람이나 날씨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9달 이상이 더 걸렸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는 바람에 이 지름길은 한동안 막혀버렸다. 웰즐리는 런던의 고위 관료나 동인도회사 임원들과는 달리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잠을 설치지는 않았다. 육로든 해로든 이집트에서 인도를 침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웰즐리는 런던에 있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였다. 그느느 전진 정책의 확고한 옹호자로서 동인도회사의 경계를 그대로 두려는 회사의 임원들과는 달리 더 밀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임원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영토 확장보다는 초조한 주주들에게 이윤을 안겨주는 일이 급했다. 사실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무굴 제국이 해체되면서 생긴 진공 속으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것도 비싼 대가까지 치르면서 진입하여 정치와 행정에 점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주주들에게 자신들이 보장했던 연례 배당금을 주기는커녕 점점 빚이 늘어나 늘 파산 위험에 시달렸다. 임원들은 침략군과 싸울 경우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회사는 완전히 망할 것임을 알았다. 프랑스와 사활을 건 싸움에 몰두한 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기는 웰즐리에게 그가 원하던 기회를 주었다. 웰즐리는 이 위기를 구실로 프랑스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던 원주민 통치자들을 탄압하고 쫓아냈다. 그들의 비호를 받는 프랑스 요원들이 인도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웰즐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런던이 자신의 귀중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에게 줄 수밖에 없었던 재량권을 최대한 활용하였으며 그 결과 인도의 새로운 지역들이 영국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의 보고서가 영국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그 내용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적어 넣었기 때문에 그는 총독으로 재직하는 7년 내내 이런 식으로 땅을 빼앗았다. 이렇게 하여 웰즐리가 1805년 귀국할 무렵에는 동인도회사의 영토, 이 회사에 종속된 국가와 이 회사가 부분적으로 관리하는 지역들이 크게 늘어났다. 원래는 캘커타, 마드라스, 봄베이 등 해안의 3대 관구에 불과하였던 것이 우리가 현재 알고있는 인도의 대부분을 포함하게 된 것이다. 신드, 펀자브, 카슈미르만 여전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놀라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최초 동력 또는 구실이 된 것은 나폴레옹이 곧 인도로 올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런던에 그렇게 큰 공황을 일으켰던 이 위협은 결국 끝이 나고 말았다.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가 이집트에 이르기 전에 탐지해 내 차단하지 못한 실수를 만회한 셈이다. 넬슨은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동쪽의 아부키르 만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함대를 발견하였다. 넬슨 제독은 1798년 8월 1일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를 함정에 빠뜨려 박살을 냈다. 프랑스 함대는 겨우 2척만 빠져나갔다. 그는 이렇게 나폴레옹을 프랑스와 단절시키고 보급선을 끊어버렸다. 이 승리 덕에 런던 동인도회사의 경영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젊은 나폴레옹은 영국인을 인도에서 몰아내고 동양에 거대한 프랑스 제국을 세우겠다는 꿈을 결코 져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프랑스에 돌아가자마자 유럽에서 연속하여 화려한 승리를 거두며 힘을 쌓아갔다.